아주 어릴때 여름이 되면 팥을 한 통 사고 팥빙수기계 하나 꺼내서 그걸로 빙수를 만들어먹으며 여름을 보냈습니다.
팥 통조림 큰 거 하나를 사오고 우유랑 후르츠칵테일, 연유만 있으면 재료 준비는 끝입니다.
그렇게 재료가 준비되면 얼려놨던 얼음을 꺼내서 팥빙수기계 안에 넣고 연필깎이 돌리듯이 손잡이를 돌리면 아래에 얼음이 갈려서 나옵니다.
곱게 갈려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덩어리도 같이 딸려나오지만 그때는 그것마저도 너무 시원하고 맛있었습니다.
얼음을 갈아놓고 그 위에 팥을 수저로 듬뿍 퍼서 올려놓고 위에 우유를 살짝 부은 뒤 마지막으로 후루츠칵테일을 올리고 연유를 뿌려 비벼먹으면 진짜 꿀맛이었습니다.
너무 시원하고 맛있어서 여름이면 거의 그렇게 집에서 팥빙수를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별다른 재료도 필요없고 팥이랑 후르츠칵테일 모두 통조림 제품이라 먹고나서 남은 것도 그대로 냉장고에 넣어두고 먹었네요.
그때는 우유가 그리 비싸지 않았던 시절이라 자주 사먹었는데 집에 우유가 없으면 그냥 우유를 넣지 않고도 해먹곤 했습니다.
우유가 있어야 더 맛있긴 한데 우유가 없어도 뭐 없는대로 맛있게 먹곤 했습니다.
그때는 설빙같은 브랜드가 없었고 팥빙수를 먹으려면 동네 분식집을 가거나 아니면 제과점을 가야했습니다.
특히 제과점에서 파는 팥빙수는 이것저것 많이 올려줘서 가격이 좀 비싼 편이었습니다.
젤리도 올려주고 그렇게 팔았었는데 그 당시에도 한 3천원정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동네 분식집에서 파는 팥빙수는 시럽이 주로 들어갔습니다.
빨간 딸기시럽이나 초록색 시럽 등등 얼음을 갈아서 그 위에 여러가지 시럽을 뿌려주는 빙수가 있었고 그런 시럽빙수는 300~500원정도로 가격이 저렴했었습니다.
통조림은 동네에서 팔지 않아서 멀리에 있는 대형마트까지 가서 사왔었는데 까르푸 같은 마트가 부천에 있어서 부천까지 가서 사왔던 기억이 납니다.
팥빙수를 집에서 만들어먹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안 먹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달달한 게 안 땡겨서 그런건지 아니면 술을 마시게 되면서 빙수를 멀리하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도 빙수는 잘 안 먹습니다.
특히나 우유빙수 같은 재질은 먹고나면 뭔가 텁텁하고 더 목이 마른 느낌이라 잘 안 먹게됩니다.
차라리 우유빙수가 아닌 얼음알갱이로 빙수를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요즘은 어디를 가나 다 우유빙수가 기본이라 그리 땡기지가 않습니다.
밥 먹고 설빙 포장해와서 먹거나 배달해와서 먹으면 그냥 한두숟가락 퍼먹고 끝입니다.
망고빙수도 생망고가 아닌 냉동망고 올려주는 거라 처음에만 신기해서 좀 먹었지 지금은 있어도 잘 안 먹습니다.
날씨가 덥고 요즘 걷기운동을 하느라 땀도 많이 흘리고 해서 맥주를 많이 마시고 있는데 가끔은 어렸을때 먹었던 그런 스타일의 빙수를 먹고싶을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유를 갈아서 만든 빙수가 아닌 그냥 얼음을 갈아서 그 위에 팥이랑 후르츠칵테일이랑 우유에 연유 살짝 뿌린 단촐한 그런 빙수가 한번씩 땡기는데 찾아보니 등촌동에 ‘간판없는 햄버거집’이라는 곳이 예전에 해먹던 스타일대로 파는 걸 봤습니다.
딱 제가 만들어먹던 그 스타일 그대로라서 너무 반가웠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서 햄버거랑 팥빙수를 먹어보고 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