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호 시간에 늦어서 군장 뺑뺑이 돌던 기억

39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을때 훈련기간은 6주였습니다.

각 주차별로 훈련내용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여기저기에 남겨져있는 글귀를 보며 다음주엔 어떤 훈련을 하겠구나 대충 알 수 있었습니다.

화생방이나 수류탄 훈련 등등 무서운 훈련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매일매일이 긴장감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 훈련이 끝나고 쉬는 기간이 주어지면 빨래는 무조건 해야했습니다.

세탁기가 없어서 항상 손빨래를 해야했는데 씻고 빨래를 하지 않으면 점호시간에 무조건 털리기 때문에 개인정비 시간에는 항상 짝을 지어서 씻으러 나갔었습니다.

바깥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을 수 있지만 인원은 많은데 수도꼭지는 한정적이라 항상 줄을 서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제일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슬슬 점호시간은 다가오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같이 씻던 주변의 동기들은 하나둘씩 사라졌고 제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빨래를 하고 2층 계단으로 올라가던 시간이었습니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문이 잠겨있어서 너무 놀랐습니다.

이미 점호가 시작된 겁니다.

놀라서 다른쪽으로 이동해보니 그쪽 문도 닫혀있었고 결국 가운데 문으로 들어간 저는 이미 점호를 하고있는 동기와 조교 및 간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빨래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수건을 들고서 슬리퍼 차림으로 점호가 진행되는 걸 본 저는 상황이 x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쌍욕을 먹고 얼차례를 받은 후 내무반으로 돌아왔는데 이미 조장들도 같이 털린 상황이라 저는 욕받이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있은 후 저는 그 주 토요일 일과시간에 불려나가서 완전군장을 하고 연병장 뺑뺑이를 1시간 돌았습니다.

군장 뺑뺑이 도는 건 처음 경험했는데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씨에 군장을 매고 도는 뺑뺑이는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1시간을 뺑뺑이 돈 이후에 내무반에 올라가서 옷을 벗는데 그 안에서 땀이 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저 때문에 같이 혼났던 조장들은 제가 얼굴이 벌겋게 올라와서 땀을 한바가지 흘린 걸 보고 미안했는지 그때 뭐라고 해서 미안했다며 연신 사과를 해댔습니다.

그래도 군장 뺑뺑이 하나에 모든 게 잘 해결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좀 억울한 면은 있습니다.

씻을 시간을 더 주던지 아니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던지 수돗가에서 한 숨 자고 온 것도 아니고 빨래를 하고 왔을 뿐인데 그렇게 혼나야했나 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군대가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일반 사병으로 들어왔으면 그렇게 구르다가 전역하는 게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대한 다치지 않고 전역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아니까 불만은 있었어도 이를 드러내지 않고 최대한 조용히 지내다가 그렇게 전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강제로 끌려가서 군생활을 하고있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있을텐데 다들 몸 건강히 잘 전역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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